셀 수 없이 많은 전자사전이 명멸중이다. 어떤 제품은 남고, 어떤 제품은 사라진다. 최근의 전자사전을 보면 PMP와 다를 것이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키보드 없으면 PMP, 있으면 전자사전'이라 할 정도의 차이만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같은 가격에 다양한 기능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게될 것임은 부인하지 않겠다. 다만, 쓸데없는 기능과 내용으로 가격만 높은 전자사전도 있다. 바로 에이트리 UD20이 그렇다. 자. 따져보자.
비싼게 비지떡일수도
부모들이 절대로 아까워하지 않는 것은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공부에 대한 것이다. 과거 시골에서는 못 배운(?) 부모님께 '코사인값 주세요, 탄젠트값 주세요'라는 명목으로 용돈을 타내곤 했던 386세대의 전설이 있다. 이 현상은 세대가 변해도 계속된다. 자식이 '엄마, 인강(인터넷 강의)하고 동강(동영상 강의) 봐야하니 전자사전 필요해요'라고 하면... 금쪽 같은 자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돈 아까워할 부모가 어디 있나. 성적만 오른다면야 두 개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기계값, 만만치 않으며 자식은 비싼 제품을 사야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잘도 가져다 붙인다. 결국 가장 비싼 - 그래서 공부와는 필요 없는 기능이 더 많이 들어있는 - 제품을 사주고야 만다(이래서 본 블로거는 전 국민이 얼리어답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식은 그 물건으로 신나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라이프를 즐기는 사이, 공부는 저 멀리로 사라져 가고 재수생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운다.
터치스크린의 필요충분조건
일단 에이트리 UD20은 모든걸 다 집어넣는다는 콘셉트다. 전자사전에 음악과 동영상 재생, 지상파 DMB, FM라디오 등등등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입 아플 정도다. 안 되는 것 세는 게 빠르다. 말나온 김에 세보자. 안 되는 것(또는 모자란 것)은 Wi-Fi 접속, 윈도 CE의 장점을 이용한 사용자 어플리케이션 설치, 터치스크린 탑재로 누릴 수 있는 편리한 사용자 UI 등이다.
사실 Wi-Fi 접속은 PMP 중 몇 개 모델에서 가능했던 것이며 아직 전자사전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 조만간 탑재될 것이 분명하며 현재로서 안 되는 것이 흠은 아니다. 윈도우 CE 탑재 역시 마케팅적으로만 활용될 뿐 - 모르는 사람은 CE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윈도우'를 탑재했다니 괜찮은 성능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할 것이다 - 이다. 이 역시도 UD20은 모디아나 조나다와 같은 HPC가 아니므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터치스크린만이 가진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용자 UI다.
UD20의 바로 전 모델인 UM10에는 터치스크린이 탑재되지 않았다. UD20의 인터페이스를 보면, 전원을 켠 후 메인 메뉴(1 depth)에는 각각의 기능들을 의미하는 대형 아이콘이 보인다. 여기서 아이콘을 터치해주면 하부 메뉴가 풀다운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2 depth 부터는 UM10의 그 인터페이스와 거의 동일하다. 이럴거면 터치스크린을 왜 탑재했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크고 무겁다
터치스크린이 제대로 장점을 발휘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터치스크린에 맞는 UI와 GUI다. 이 두 가지가 빠진 터치스크린은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위한 마케팅적 술수일 뿐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삼성의 P2와 애플 아이팟 터치를 각 5분씩만 만져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양적 승부의 원흉
최근 전자사전은 콘텐츠로 경쟁한다. 물론, 전자사전이기에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질적으로 경쟁 - 우리 회사에 탑재된 전자사전에는 최신단어가 나오는다와 같은 - 하는 듯 싶더니, 어느새 양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에이트리 UD20은 무려 60종이 넘는 사전의 개수로, 누리안 X20은 무려 11개국의 사전을 탑재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따져보자. 동시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함께 공부하시는 분은 리플을 달아주시라. 그리고, 11개의 언어에 관련된 전자사전이 필요한 분도 리플을 부탁드린다.
이런 개수 경쟁의 시작이 바로 에이트리다. 언제나 동급 최다의 콘텐츠를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왔다. 결국 이 경쟁은 콘텐츠 비용의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의 상승을 가져왔다. 정말로 소비자를 생각하는 기업의 태도는 아니다.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기업의 태도일 뿐이다. 쓰지도 않을 이런 사전 라이센스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자신이 필요한 사전을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과연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몇 개의 전자사전의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을까? 안다. 출판사들이 한권 또는 두권씩은 라이선스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진정으로 소비자를 생각한다면 전자사전이 필요한 사람들도 싸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플래시 메뉴의 장점?
현재 홈페이지내 제품 소개 페이지를 보면, '전자사전 최초로 풀 플래시 메뉴'를 적용시켰고, '전자사전 최초로 풀 플래시 메뉴가 적용된 UD20으로 외국어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선전 중이다. 외국어 공부에 플래시 메뉴가 대체 왜 필요한지 본 블로거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외국어 공부의 즐거움은 원하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정도만 해도 제목에 대한 목적은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전자사전은 공부를 하기위한 물건이라고 한다면 본 블로거가 너무 구시대적일수도 있겠다. 백번 양보해서 공부를 위한 물건이 아닌 멀티미디어의 총아라고 해보자. 그래도 공부를 방해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본문에서는 에이트리가 철퇴를 맞았지만, 나머지 제조사들 역시 별반 다를 것 없다.
반성하시라.

